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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국내여행

효도는 핑계인 제주 여행: 마지막. 좋아하는 것에 대한 조각들

by es-the-rkive 2022. 1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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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지가 많아질 수록 결정하기가 조심스러워진다.
사실 경험하고 난 뒤엔 무엇을 선택해도 크게 문제될 것은 없는 것 같은데(애초에 내가 위험할 수 있는 환경에 나를 절대 노출시키려고 하지 않으니까),

  • 합리적으로 비용을 사용했는가
  • 이 선택이 옳은 선택인가, 더 좋은 결정은 없었는가

같은 고민이 더 행동을 어렵게 만든다.

적어도 분기에 한 번 제주에 내려가게 되면서 다양한 경험을 하고 싶은 마음과 무엇이든 주저하게 되는 마음이 계속 결정을 어렵게 만들었다.
그래서 집주인이 살고 계신 집의 개인실을 이용한 경험이 어땠나 돌아보면,
굉장히 새롭고 재미있었다.

충분한 개인공간을 이용해서 편안했고, 덜 안전할 상황도 전혀 없었다.
내가 뚝딱거리는 것 정도는 서투른 외국어를 사용해도 현지에서 대부분 친절하게 받아주는 것과 같이, 보이지 않는 배려를 통해 이해받았다.
이젠 차를 빌려 조금씩 운전을 하기도 했다.

삶을 일종의 퀘스트라고 무의식적으로 느끼고 있고 늘 더 나은 사람이 되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것에 목말라있다.
그래서 게임처럼 무언가 깨는 것, 미션을 완수하는 것을 좋아한다.
모르는 사람과 의식적으로 조금 더 만날 기회를, 말할 기회를 만드는 것이 시작하기 전엔 두려웠지만,
하고 났을 때 '어설프지만 그래도 한 마디 더 했어'라는 아주 작은 뿌듯함으로 돌아온다.
이 고민과 행동을 20대 초반에 몇 년에 걸쳐 반복했기 때문에, 나는 내 의견을 말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게 되었고 사회생활도 지금까지 할 수 있었다.

마지막 날에도 호스트님이 너무 잘 챙겨주셔서 감사했다.

공간에 있어서도 이전에 제주, 타지를 방문할 때면 호텔만 좋아했었다.
공간 자체보다는 잘 정돈된 서비스를 좋아했고, 이전엔 다른 선택지를 열어두는 것에 소극적이었다.

독립을 하고, 거의 매년 이사를 다니며 내 공간을 만들어갈 때 처음엔 비용을 많이 들이거나 '미관상 목적'에 치중된 것을 두기보다는 실용적인 것만 추구했고, 나만의 공간을 만족스럽게 꾸미는 것을 할 줄 몰랐다.
그러다 콜롬비아에 살 때부터 에어비앤비를 찾아보기 시작했고, 점차적으로 에어비앤비를 이용하는 빈도가 늘어가면서 공간에 대한 벤치마킹을 할 기회가 많아졌다.
거기에 유튜브 룸투어영상의 알고리즘에 빠져들면서 '나의 공간'에 대한 생각이라는 걸 하기 시작했다.

깨끗하고 편리했던 방. 이후에 집의 침실에 작은 테이블을 가져다 놓았다 :)

 

여러 경험을 통해 지금은:

  • 일이나 작업할 때가 아니면 형광등을 거의 켜지 않고 노란 빛이 도는 조명을 사용한다. 그래서 조명이 달린 침대를 구매했고 침대의 불빛으로 침실을 더 따뜻하게 보이게 만들었다. (이 이후에 버전이 3~4개쯤 더 있다)

테이블을 옮겨두기 전의 내 침실. 개인실 호스트가 되어볼까 고민할 때의 구조이기도 하다.


동네의 카페를 거닐다 소품샵에 전시된 가구를 보며 한 번쯤은 해보고 싶다고 생각한다.
집에 있는 가구는 대체로 깔끔하고 무늬가 없는 화이트 & 베이지 위주로 구성이 되어 있지만,
앤틱한 공간을 꽤 좋아한다.


단순히 '예쁜 것을 좋아한다' 이상으로,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직장인이 아닐 때 업으로 삼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를 꾸준히 생각한다.

라탄 재질을 좋아하고 집에 있는 목재가구(특히 행거)와 함께 사용하는 의류 박스는 라탄 재질인 것이 많다.
하지만 모자나 가방과 같은 아이템은 전혀 갖고 있지 않다.
나의 공간을 구상할 때 자연스럽고, 조화로운 것을 특히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걸 느꼈다.


사진첩엔 하늘과 바다의 사진이 정말 많다.
보자마자 마음이 편안해지고 힐링을 느끼는 색이자 공간이다.
집을 구할 때 너무나 중요하게 따지는 기준이 '앞이 트여있어 하늘이 보이는가'가 되었을 정도니까.


마지막 날은 까페에서 일을 하고, 점심시간에 근처에서 식사를 했다.
멀리 보이는 리조트를 보며 예쁘다고 생각을 했는데... 

 

이제 보니 난 저 스페인식(맞나?) 지붕을 좋아하는 거였다 😂

낮은 주택, 깔끔한 흰색 벽에 잘 어울리는 벽돌기와지붕. 언젠가 내 집을 짓게 된다면 꼭 이렇게 해야지.

서울 한복판에 있지만 한적한 시골과 같은 뷰

 

언제 먹어도 질리지 않는, 가장 좋아하는 요리 돈가스. 

내 취향이 뭐였는지 잊었었고, 늘 회사의 구성원들이 좋아할 만한 것만 생각하면서 몇 년을 일했다.

입사 후 1년쯤 되었을 때 누군가 내게 취향을 물었을 때 '난 취향이 없다. 동료들이 좋아할 만한 것을 신경쓴다. 내 취향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고 그 동료가 '취향이 없을리가 없다'는 말에도 고개를 저었던 기억이 남아있는데,

생각보다 난 취향이 확고한 사람이었던 모양이다. 

 

짧았고 이틀은 풀타임으로 일을 하느라 바쁜 시간이었지만, 

지나고 사진을 보면서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일정을 채워가며 시간을 보냈구나 싶다.

그래서 제주에 갈 때마다 만족스러웠던 것 같다. 

서울에선 시간과 일에 쫓겨 '어쩔 수 없는' 차선의 선택을 할 때가 많았기 때문에. 

 

일을 중심으로 도는 사람으로 지난 몇 년을 살아왔고, 

사는 곳, 취향, 생각과 행동의 우선순위를 나 개인이 아닌 일에 맞추어왔었다.

여러 계기로 이러한 삶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고, 많이 불안하기도, 고통스럽기도 했었는데, 

조금씩 나를 중심에 두는 연습을 하고 있다. 

서툴지만 내년의 나는 훨씬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을 것 같다는 희미한 기대를 품어본다. 

 

전체 리스트 👇

효도는 핑계인 제주 여행: 첫번째. Vamos!

효도는 핑계인 제주 여행: 두번째. 엄마의 취향

효도는 핑계인 제주 여행: 세번째. 아빠의 작은 정원

효도는 핑계인 제주 여행: 네번째. 워케이션

효도는 핑계인 제주 여행: 마지막. 좋아하는 것에 대한 조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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