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제주의 숙소에서 우연히 손웅정 감독님이 출연한 <유퀴즈온더블록>을 보게 되었다.
신기했다.
이룰 수 있는 가장 높은 목표를 달성했다고 봐도 무방할 세계적인 선수, 아들로서도 선수로서도 그를 키워낸 아버지가 할 수 있는 생각일까 싶었던 것이, 가능할까 싶은 겸손함과 소탈함, 자신의 아들의 성공을 기뻐하기 보다는 오히려 경계하고 조심하는 듯한 그를 보며, 어떤 사람이며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무척 궁금해졌다.
그렇게 그가 쓴 저서 <모든 것은 기본에서 시작한다>를 읽게 되었다.
모든 것은 기본에서 시작한다 - YES24
축구선수로서의 삶, 아버지로서의 삶, 지도자로서의 삶자신의 삶에 대한 반성과 성찰로 빚어낸 강건한 신념과 철학!“나의 축구는 온전히 아버지의 작품이다” - 손흥민 ‘겸손하라. 네게 주어
www.yes24.com
추운 독일 함부르크에서 몇 년을 버티며 아들을 훈련시킨 이야기도 인상이 깊었으나,
가장 눈에 들어온 문장은 이 것이었다.
"좋은 책은 적어도 세 번을 읽는데, 처음 읽을 때는 글자색과 같은 검은색 펜으로 중요한 대목을 체크하고 메모하며 읽는다. 두 번째 읽을 때는 파란색 펜으로 반복하고, 세 번째 읽을 때는 가장 핵심이 되는 내용을 빨간색 펜으로 체크하고 메모한다."
독서를 하는 그의 태도에서, 시간에 쫓기듯 많은 책을 빠르게 읽기에 급급했던 나의 독서 습관을 반성하게 되었다.
처음 읽을 때 노란 색으로 하이라이트를 했었다. 평소 습관이었고, 주로 밀리의 서재를 통해 독서를 하면서 아이폰 위젯을 통해 하이라이트한 문구를 볼 수 있게 세팅은 해 두었지만 막상 잘 들춰보진 않았었다.
첫 번째 읽을 때 표시한 문구들은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기본에 충실하자는 것, 겸손하자는 것이었다.
특히, 이직을 미루어가며 마음의 괴로움이 많았던 시기라 이 문장이 유독 박혔다.
"주도적인 삶을 이끄는 사람이 되는 것이 먼저여야 한다."
"거기에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매료된 채로 쏜살같이 이 책을 끝마친 뒤, 찰나의 깨달음과 느낀 바를 또 흘려보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바로 이틀 후 다시 이 책을 펼치게 되었다.
다른 책들처럼 군데군데 노란 색으로 하이라이트가 된 책을 다시 읽으며, 두 번째로는 보라색 하이라이트로 표시해가며 다시 읽었다.
처음 읽을 때와 달리 눈에 띈 문장은 '지금'의 삶에서 주체성을 갖고 매일을 행복하게 보내고 싶은 마음이 담긴 문장들이었다.
"하지만 미래에 대한 불확실함 속에서 미리 걱정만 하고 전전긍긍하는 삶은 온전한 삶이 아니다."
흔하디 흔한 문장이어서 처음 읽을 땐 스쳐 지나간 모양이다.
두 번째 읽을 때 마음이 쿵 내려앉았다. 그간 나의 삶이 흘러가는 방향에 맞추어 순간에 충실했던 것이 이 시기엔 마치 나의 삶의 경로를 생각하지 않고 살았기 때문에 현재의 삶 안에서만 생각하는 것만 같았다. 미로 위에서 드론으로 아래를 내려다 보듯이 내 삶의 궤적과 앞으로의 방향을 생각해야 했다.
"생각하면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는 말이..."
이 즈음 나는 회사에 공식적으로 퇴직을 이야기하게 된다.
물론 이 때까지도 마음 속에 미련이 많았다. 회사 안에서 이렇게 하면, 저렇게 하면 내가 더 나은 여건에서 일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한 줌의 기대였다.
하지만 긴 시간을 제너럴리스트로 일해온 나에 대한 회사의 관점은 꽤나 굳건해서, 나에 대한 프레임을 다시 바꾸는 것은 지금까지 온 만큼의 세월의 노력으로도 쉬울 것 같지가 않았다.
열흘이 지나고 문득 이 책이 다시 생각났다.
밀리의 서재 안에서 책장을 1/3독, 2/3독, 완독으로 나누고, 이 책을 2/3독 책장으로 옮긴 후 다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작년 한 해 '미니멀리즘'에 대해 생각할 기회가 많았다.
물질에 있어서는 효율을 더욱 생각하게 되었지만, 생각이라는 영역에서 나는 너무 과하게 많은 생각을 안고 걱정하며 살고 있었다.
다시 책을 읽으며 삶과 생각을 단촐하게 만들자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는 그렇게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잘살게 됐다고 여기면서 인간은 필요한 것을 넘어서서 불필요한 것을 너무도 많이 쌓아두고 살아온 듯합니다."
무엇보다, 효율을 추구한다는 명목으로 모두에게 좋은, 혹은 많은 이유로 좋은 것을 우선적으로 추구하던 내가, 정말로 나 개인에게 이익이 되는 선택을 하지 않았음을 생각하게 되었다.
나에게 가장 좋은 것, 지금의 삶에서 행복을 찾기 위한 방법으로 나는 오랜 시간 애정을 깊이 담았던 조직에서 멀어지기로 결정했다.
"나 자신에게 좋은 것이 진짜 좋은 것이다."
어떤 삶을 살 것인가, 매일 최선을 다하지만 끌려가듯 살지 않는 것, 잠시 잃어버린 내 생활의 주체성을 다시 찾고 살아가는 것의 회복을 올 해 이루어보기로 하고, 이제 남은 회사생활을 잘 정리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보려고 한다.
손웅정 감독이 말한 삶의 방향에 깊이 공감했기 때문이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건강하고 자유롭고 행복한 삶. 이러한 삶을 살겠다."
그리고 지난 몇 달의 마음의 피로와 이 때문에 계속 약해진 체력을 잠시 일에서 멀어지게 하기 위해,
내일 밤 멀리 낯선 곳으로 여행을 떠난다.
꼭 무언가를 이루어내고 깨달아야만 하는 것이 아니니, 내가 그토록 원하고 희망했던 여행의 시간을 가지면서 다시금 즐거움과 행복을 느끼고 일상으로 돌아오기를 희망한다.
'일상과 생각 > 매일의 삶'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저 꿈 이야기. 삶에 큰 파동을 일으킨 사람에 대한 기억. (0) | 2023.03.29 |
---|---|
봄을 앞두고, 지난 겨울 돌아보기 | 1-2월 회고 (0) | 2023.03.02 |
갑자기 방문한 세라젬 카페 체험에서 잠이 들다 (0) | 2023.01.15 |
술이 계속 등장하는 크리스마스 이브 홈파티 후기 (0) | 2023.01.05 |
새 해 첫 날, 하루 동안 한 일 (0) | 2023.01.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