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2일에 있던 송년회를 지금에서야 쓰게 된다.
살면서 두 번째다.
인간관계가 확 넓어지는 시도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는 시기가.
회사에 소속되어 일하지 않는 지인들이 늘어나면서, 그들을 통해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이 날도 그랬다.
같은 동네에 살았었으니까, 친구가 일하는 곳에 자주 놀러갔으니까, 이런저런 이유로
동네 사랑방에서 열리는 송년회에 참여하게 되었다.
바리스타가 된 친구가 카페에서 일하며 가까워진 카페 사장님과 지인, 이 동네에서 가게를 운영하시는 젊은 사장님들과 친구까지 7명 정도가 모이게 되었다.
도착해보니 친구는 장을 보러 나갔고, 처음 뵙는 분들과 먼저 인사를 나누었다.
낯을 아주 심하게 가리던 이전과는 다르지만 약간의 낯가림과 어색함을 느끼고 있었는데, 곧 없어질 감정이라 생각하면 조금 더 마음이 편해졌다. 굳이 말을 하거나 분위기를 이끌어내야 할 필요도 없었으니까.
적당히 텐션을 유지해도 되는 것을 느끼면서부터 조금 더 자연스럽게 행동할 수 있게 되었다.
장을 본 것들을 샤사삭 정리하고 식사할 준비를 한다.
알코올을 즐기지 않더라도 부담이 없는 논알콜 화이트 와인으로 시작했다. 물론 이 다음에 마실 알코올을 바로 찾았지만
논알콜이라 상큼한 음료로 꿀떡꿀떡
방어의 계절이니까 방어도 한가득-
와인샵 사장님, 송년회 멤버들이 가져온 병이 하나둘씩 늘어난다.
사진부터 머리가 아파오는 와인과 막걸리의 조합 😇
이 한 병으로 끝나지 않았다.
크리스마스니까, 하면서 등장한 슈톨렌!
먹는 것도, 마시는 것도 각양각색의 메뉴 안에서 각자의 취향대로 즐기는데 아무도 개의치 않는 자리여서 더 좋았다.
크리스마스 기념이라 등장한 케익. 그런데... 접시가 없다?
그럴 때 (정말이지 크레이지 아이디어지만 대부분이 취해있었기 때문에) 누군가가 컵을 들고 나타났다.
다들 한참 웃고는 조용히 컵을 거꾸로 들기 시작했고, 한 손엔 스마트폰을 들고 사진을 찍었다.
다시 보니 술냄새 나는 사진이네.
새벽 2시쯤 자리를 크게 한 번 정리하고는 술병을 나란히 세워두고 찍었던 사진.
이 때 장소를 제공해주신 카페 사장님은 술을 못 드시는 분이어서 일행을 데려다주고 먼저 퇴근하셨고, 카페 아르바이트인 내 친구, 그리고 친구의 지인들만 남았다.
하나 둘씩 집에 가고 마지막에 남은 사람은 나까지 세 명.
막걸리, 화이트 와인, 위스키, 막걸리, 레드와인, 막걸리, 스파클링 논알콜 와인, 막걸리(아마도), 로제 와인, 의문의 술 1, 요세로제, ...
그리고 마지막에 나를 완전히 보내버린 술은 가운데 병에 담긴 비매품 사과주였다.
결국 그 날은 처음으로 친구의 집에서 잠을 청할 수 밖에 없었다.
눕자마자 필름이 끊겨버렸고, 다음날 오전 반차를 쓰고 나서 친구 집에서 누워서 재택근무를 하고, 결국 오후 7시에 같이 해장을 하고 헤어졌다 😇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의 즐거운 자리가 아주 자연스러운 것은 아니다.
낯도 많이 가리는 편이었고, 내가 혹시나 실수할까봐 걱정도 많았었다.
그래도 기회가 올 때 '에잇 한 번 해보자'는 마음을 먹었고, 그렇게 또 하루를 잘 보냈다는 것에 만족한다.
이 경험들이 20대 초반부터 2-3년이 쌓여서 회사에서 일할 수 있게 되었고,
2년 이상 왕복 4시간 출퇴근을 버티며 어학원에 다닌 덕분에 콜롬비아에 가는 기회가 왔을 때 덥석 받을 수 있던 것처럼.
다른 기회를 위한 하루의 작은 발전이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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